▲ 해운대장애인자립생활센터 오카리나 자조모임 '소나기' 단원들이 오카리나 수업을 받고 있다. 해운대장애인자립생활센터 제공
매주 수요일 오전 10시. 해운대장애인자립생활센터 강의실(부산 해운대구 화목데파트 119호)은 '소리를 나누는 기쁨'으로 넘실댄다.
소리를 나누는 기쁨이란 뜻을 담은 '소나기'는 2010년 창단된 중증 시각장애인, 지체장애인 11명으로 구성된 오카리나 자조모임. 그들은 아름다운 오카리나 음색을 나누며 서로의 삶을 응원한다.
해운대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리를 나누는 기쁨' 회원들
지난달 27일 열린 개인 발표회
바위섬·약속·꿍따리 샤바라…
연주 이어지자 자신감·기쁨 가득
종종 버스킹 등 공연 섭외도 받아
"시각장애인·지체장애인 어울려
위안 주고 힘 받는 소중한 시간"
지난달 27일은 분기마다 열리는 개인 연주 발표회 날이었다. 대부분 연주 경력 3년이 넘는 수준급 연주자들이지만, 독주는 늘 손에 땀을 쥐게 한다.
올해 4월 드림 페스티벌, 5월 문화 다양성 페스티벌 버스킹…. 세월만큼 무대 경력도 차곡차곡 쌓이고 있지만, 연주 전엔 언제나 색다른 떨림이 기다리고 있다. 첫 연주자 장미영(시각장애인) 씨가 마이크 앞에 앉았다. 작은 강의실의 공기가 긴장감으로 팽팽해졌다.
■긴장감 넘치는 '소리를 나누는 기쁨'
장 씨가 들려줄 곡은 '바위섬'. 긴장해서 손이 살짝 떨리기도 했지만, 무사히 연주를 마쳤다. 두 번째 연주자 이복심(시각장애인) 씨는 대중가요 '어머나'를 통통 튀는 오카리나 음색으로 들려줬다.
김미희(시각장애인) 씨는 드라마 OST로 귀에 익은 곡 '약속'을 연주했다. 박자를 살짝 놓치자 다른 연주자들이 박수를 치며 박자를 맞추기 시작했다. 따뜻한 응원에 힘입어 연주를 잘 마친 김 씨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네 번째 연주자 최재연(지체장애인) 씨는 '바위섬'을 유려하게 연주했다. 송선희(시각장애인) 씨는 '꿍따리 샤바라'를 흥겨운 음색으로 선보였고, 김정미(시각장애인·해운대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 씨는 영국 민요 '그린 슬리브즈'를 소프라노와 알토 오카리나를 번갈아 가며 자신만만한 연주를 했다. 강의실은 오카리나의 아름다운 음색을 나누는 기쁨으로 술렁댔다.
■소리 없는 위안으로 서로를 다독이다
'소나기' 회원들은 3개월에 한 번씩 자신 있는 곡을 선곡해 독주한다. 매주 단체 수업을 하다 보니 개인별 실력 향상을 위해 마련한 자리다.
그러나 최재연(67·방송통신대 경영학과 4년) 씨는 "어떤 무대든, 무대라 생각하면 멘붕이 오기 마련"이라고 말했다. 이 발표회 사흘 전에야 방통대 기말고사가 끝났다는 최 씨는 "연습할 시간이 없었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센터에서 오카리나 연주를 한 지 4, 5년 됐는데 올해까지는 대학 공부 때문에 힘에 부치지만, 졸업하면 본격적으로 연주 연습에 나설 것"이라며 "내년엔 진짜 실력을 보여주겠다"고 했다.
지체장애인이 시각장애인을 도와가며 그들은 서로를 다독인다. 최 씨는 "서로 위안을 주고, 힘이 되는 이 삶이 참 고맙다"고 했다.
"운동을 하거나 그림 그리기가 힘든 시각장애인들에게는 음악이 가장 접근이 쉬운 장르"(송선희 씨)일 수도 있다.
송 씨는 "그동안은 늘 듣기만 하는 청중이었다가 이젠 가끔 무대에도 서니 삶에 자신감이 생기고 음악을 한다는 기쁨 덕분에 하루하루가 즐겁다"고 했다.
■"좋은 연주? 밀당 잘하는 연주!"
오카리나 강사 박미현 씨가 연주에 대해 총평을 하는 시간. 그는 "악기를 들면 저돌적으로 되는데 멈출 때를 알고 여유가 있어야 한다"며 "연습할 때는 묻어갈 수 있지만, 솔로 연주 때는 버릴 건 버릴 줄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피아노는 여리게, 포르테는 세게, 음악은 밀당을 잘해야 한다는 것이다.
약하든, 크든 소리의 힘은 있어야 하고 소리를 죽이는 연습도 해야 한다는 개별 평가도 있었다. 박 강사는 "김정미 소장님은 강사보다 연주를 잘한다"며 "알토는 마이크 가까이, 소프라노는 마이크에서 멀어지는 조절을 잘해서 지난번 연주보다 소리의 울림이 좋았다"라고도 했다.
박 강사는 "귀가 열려 있는 시각장애인들은 비장애인들보다 연주 실력이 월등하다"며 "소나기는 강사의 말 한마디도 놓치지 않으려는 열정까지 더해져 나날이 발전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로 도움주며 더불어 사는 세상
활동 보조 직원 겸 소나기 단원인 하윤숙(지체장애인) 씨는 "오카리나 연주를 배우는 거로 끝나는 게 아니라 버스킹 등 공연 섭외도 종종 오기 때문에 '소리를 나누는 기쁨'을 제대로 누리고 있다"고 했다.
'소리를 나누는 기쁨'은 '서로 돕는 기쁨' 덕에 배가 된다. 소나기 활동 보조인 김선영(뇌병변장애인) 씨는 악보를 복사하고, MR(배경음악) 지원을 하고, 시각장애인들을 위해 커피도 내리는 '소소하지만 중요한' 일을 한다. 김 씨는 "장애인이라고 봉사를 받아야만 하는 게 아니라 장애 유형별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서로 나눠주면 된다"고 했다. 해운대장애인자립생활센터는 이름처럼 '장애인, 비장애인을 떠나 모두 함께 어울려 사는 공간'. 세상은 서로 도움을 주고받고 사는 곳이기 때문이다.
소나기의 다양한 연주 활동은 해운대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홈페이지(http://www.hudcil.or.kr/)에서 찾아 들을 수 있다.
강승아 선임기자 seung@busan.com